술을 마신 다음 날, 전날 밤의 기억이 전혀 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 끊기는 경험을 한 적이 있으신가요?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신 후 필름이 끊기는 현상(일명 블랙아웃, blackout)을 겪곤 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이번 포스트에서는 술 취하면 기억이 사라지는 이유,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 그리고 이를 방지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술을 마시면 왜 필름이 끊길까?
술을 마신 후 기억이 사라지는 현상은 단순히 “너무 많이 마셔서”가 아니라, 알코올이 뇌의 기억 형성 과정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알코올은 해마(hippocampus)라는 뇌 부위의 기능을 방해하는데, 이 해마는 우리가 경험한 것들을 단기 기억에서 장기 기억으로 저장하는 역할을 합니다. 즉, 술을 과음하면 해마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지 못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필름이 끊기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2. 필름이 끊기는 과정
술을 마시면 뇌에서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중에서도 필름이 끊기는 현상과 가장 관련이 깊은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해마의 기능 저하
해마는 기억을 저장하는 핵심 기관입니다. 하지만 술을 과음하면 해마의 뉴런(신경세포) 활동이 억제되면서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는 능력이 저하됩니다. 그 결과, 술을 마시는 동안의 경험이 뇌에 남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2) 신경전달물질의 변화
알코올은 GABA(감마아미노부티르산)와 글루탐산이라는 두 가지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깨뜨립니다.
- GABA 증가: GABA는 신경 활동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는데, 알코올을 섭취하면 GABA 분비가 증가하여 뇌 활동이 둔화됩니다.
- 글루탐산 감소: 글루탐산은 기억 형성과 관련된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인데, 알코올이 이를 억제하여 기억 저장이 더욱 어려워집니다.
3) 혈중 알코올 농도와 블랙아웃
술을 얼마나 마셨느냐에 따라 기억 상실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 혈중 알코올 농도 0.15% 이상 → 부분적인 기억 상실(어떤 일들은 기억나지만 일부는 기억나지 않는 상태)
- 혈중 알코올 농도 0.20% 이상 → 완전한 블랙아웃(기억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음)
혈중 알코올 농도가 높을수록 해마의 기능이 더욱 심각하게 저하되어 필름이 끊길 가능성이 커집니다.
3. 필름이 끊길 때 나타나는 유형
모든 블랙아웃이 동일한 방식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술 취한 상태에서 기억이 끊기는 유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부분적 블랙아웃 (Fragmentary blackout)
- 특정 순간이나 사건이 기억나지 않는 경우
- 술을 마시는 동안 대화나 행동을 했지만, 일부만 기억이 남아 있음
- 다음 날 주변 사람들이 이야기해 주면 기억이 부분적으로 떠오름
2) 완전한 블랙아웃 (En bloc blackout)
- 술을 마시는 동안의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경우
- 아무리 노력해도 그 시간 동안의 기억이 전혀 떠오르지 않음
- 해마가 심각하게 억제되어 기억이 아예 저장되지 않음
이 중에서도 완전한 블랙아웃은 심각한 수준의 과음으로 인해 발생하며, 자주 경험할 경우 뇌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4. 필름이 끊기는 것이 위험한 이유
술을 마신 후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단순한 일시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자주 반복될 경우 건강과 안전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1) 사고 위험 증가
기억이 사라진 상태에서는 본인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교통사고, 폭력 사건, 위험한 장소에서의 실수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큽니다.
2) 뇌 기능 저하 및 장기적인 문제
자주 블랙아웃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해마 기능이 점점 저하될 수 있습니다.
- 단기 기억력 감퇴
- 집중력 감소
- 알츠하이머와 같은 뇌 질환 위험 증가
3) 알코올 중독 위험
블랙아웃을 자주 겪는 사람들은 알코올 의존성이 높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술을 마시는 습관이 지속되면서 점점 더 많은 양의 알코올을 필요로 하게 되고, 결국 알코올 중독으로 이어질 위험이 커지는 것입니다.
5. 필름이 끊기지 않도록 하는 방법
술을 마셔도 필름이 끊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 천천히 마시기
한 번에 많은 양의 술을 마시면 혈중 알코올 농도가 급격히 상승하여 해마 기능이 저하됩니다. 술을 천천히 마시면 뇌가 적응할 시간이 생기므로 블랙아웃 위험을 줄일 수 있습니다.
2) 음식을 함께 섭취하기
빈속에 술을 마시면 알코올이 빠르게 흡수되므로, 음식을 함께 먹으면 흡수 속도를 늦출 수 있습니다.
3) 술과 함께 물 마시기
알코올은 탈수를 유발하는데, 탈수가 심해지면 뇌 기능이 더욱 저하됩니다. 술을 마시는 동안 물이나 무알코올 음료를 함께 섭취하면 블랙아웃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4) 강한 도수의 술을 피하기
도수가 높은 술(소주, 위스키, 보드카 등)은 해마 기능을 더 빠르게 억제합니다. 도수가 낮은 술을 마시는 것이 블랙아웃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5) 적절한 음주량 지키기
자신의 주량을 파악하고, 이를 초과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혈중 알코올 농도가 0.15% 이상으로 올라가면 기억 상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과음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결론
술을 마시면 필름이 끊기는 현상은 단순한 취기가 아니라, 뇌에서 기억을 저장하는 기능이 일시적으로 차단되는 현상입니다. 알코올이 해마 기능을 저하시켜 기억을 저장하지 못하게 만들며, 특히 과음할수록 블랙아웃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이 현상이 반복되면 뇌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사고 위험이나 알코올 의존성 증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천천히 마시기, 음식과 함께 먹기, 물 마시기 등의 방법을 통해 건강한 음주 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